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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글로리] 1화~3화 리뷰, 상징물 분석

by 해시_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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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 : 더 글로리 (16부작)
드라마 공개 : 전반부 2022년 12월 30일 / 후반부 2023년 3월 10일
제작 국가 : 한국 

출연배우 : 송혜교, 이도현, 염혜란, 임지연, 정성일, 차주연, 박성훈, 김히어라, 김건우
연출 : 안길호 / 극본 : 김은숙


(이 글은 더 글로리 1화부터 3화까지의 줄거리와 내용, 감상과 드라마 분석 및 의미 해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 내용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드라마 더 글로리 전반부의 공식 포스터이며, 여주인공이 하얀 나팔꽃을 품에 안은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드라마 더글로리 전반부 포스터

 

복수가 트렌드인 시대

'또 복수야? ' 드라마 '더 글로리'가 한창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던 때 저는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 최근에 접하는 드라마마다 주제가 한결같이 '복수'였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팍팍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때에 미디어가 앞장서서 불난 곳에 기름붓듯 '복수'를 주제삼아 분노와 적개심만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복수'의 유행이 달갑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은 제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작되는 드라마마다 엄청나게 흥행시킨 스타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태양의 후예', '미스터 선샤인' 등, 몇 몇 작품들은 저도 참 재밌게 보기도 했지만, 그냥 딱 보는 순간의 재미로 끝나버리곤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 취향으로써, 저에게는 '이 드라마, 너무 좋다. 여운이 남는다.'등의 격한 감동까지는 없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여러 번 반복해서 감상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저에게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두 번 이상 볼 정도로 매력적이는 않았습니다.

이 작가가 대사 잘 쓰기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실제 그 필력도 인정하는 바 입니다. 김은숙 작가가 쓰는 대사는 그녀만의 고유한 색깔이 뚜렷했습니다. 대사들 대부분 독특하고 세련된 느낌을 줬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삶의 깊은 성찰에서 묻어나오는 깊이감은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조금은 작위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대적인 대사가 분명한데도 고전작품 속 연극 대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 '더글로리'는 제게는 무척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게 낯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낯설음에서 익숙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더 글로리 1화부터 3화까지의 줄거리

이 드라마는 '세명'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드라마의 현재(2022년)시점에서, 성인이 된 동은(송혜교)이 짙푸른 어둠이 깔린 새벽, 안개로 가득한 세명시를 들어서며 시작합니다.

세명시 에덴빌라. 동은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 바로 앞에 보이는 대저택 앞에서 김밥을 먹습니다. 옥상, 그리고 김밥또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동은의 서사를 조명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빌라 주인인 할머니(손숙)가 동은에게 다가와 '드디어 이사를 왔느냐'며 옥상 정원에 핀 하얀 나팔 꽃 한 송이를 꺾어주었습니다.

그 하얀 꽃은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어서 '악마의 나팔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머리를 숙여 핀 주황색 나팔꽃을 가리키며, 지상을 향해서 나팔을 불어서 '천사의 나팔꽃'이라고 합니다. 이 두 나팔꽃은 이 드라마에서 큰 의미를 가진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악마의 나팔꽃은 피해자인 동은(송혜교), 여정(이도현), 현남(염혜란), 도영(정성일)의 상징물이고, 천사의 나팔꽃은 가해자인 연진(임지연), 재준(박성훈), 사라(김히어라), 혜정(차주영), 명오(김건우)의 상징물입니다.

(연진의 남편인 도영이 왜 피해자인지 의문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폭력의 형태는 아니지만, 도영 또한 연진에게 철저히 속았고, 결혼 이후에도 엄청난 진실들을 알지 못한 채 기만당한 피해자가 맞습니다. )

장면은 바뀌어 동은이 살게 되는 빌라 내부. 벽에는 온통 가해자 5인방의 행적들을 알리는 사진과 기사가 도배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벽에 붙이던 동은의 몸엔 온통 오래된 화상 흉터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동은은 상상합니다. 그 집 안으로 연진이 들어오고, 그 연진에게 상해를 입히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복수의 현장에서 동은은 가장 끔찍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 이 상황에 까지 오게된 모든 과정들을, 연진에게 이야기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드라마의 장면은 과거로 이동하게 됩니다.

2004년 여름, 세명고등학교. 동은(송혜교)은 연진(임지연)과 재준(박성훈)을 필두로한 가해자 5인방의 학교폭력 피해자 입니다. 잔인한 폭행도 모자라 화상 고문까지 당하던 동은. 친모의 방치로 남루한 여인숙에 홀로 살다시피 했던 가난한 동은. 아무도 그런 동은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던 보건교사는 연진 모친의 압력에 의해 그만두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속물인 담임 선생 조차도 동은을 무시하고 욕했고, 급기야 폭행하기까지 이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가해자가 처벌받게 하려던 동은의 노력은, 매 번 철저하게 짓밟혔습니다. 건축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급기야 자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건축가라는 꿈도 역시 짓밟히게 된 것입니다. 자퇴사유에 기록해서 라도 가해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지만.. 자신의 경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던 담임에 의해 저지되고 맙니다. 

동은의 친모 마저도 연진의 친모가 내민 돈 봉투에 눈이 멀었고, 동은의 자퇴사유에 '부적응'이라는 세 글자를 써놓고는 도주해 버립니다. 동은을 버려둔 채 말입니다. 그렇게 동은은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동은은 분식집에서 끝없이 김밥을 말고, 야간엔 목욕탕에서 청소를 하는 등, 죽을 힘을 다해 매일을 살아갑니다. 화상으로 인한 흉터는 아물지가 않습니다. 상처를 긁고 또 긁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동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마지막에는 의지를 다 잡고 가해자들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SNS에서 가해자 5인방의 장래희망을 보게된 동은은, 그들이 아지트로 사용하는 학교 체육관을 찾아갑니다. 이 체육관은 동은이 지독한 폭력과 고문을 당한 곳이고, 그들을 찾아 간 이 날엔 동은 대신 다른 아이가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동은은 연진에게 꿈이 정말 '현모양처'냐고 물었고 연진은 그런 동은에게 비아냥거립니다. 동은은 연진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떠납니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꼭 또 보자, 박연진. '

이후 동은은 숙식을 제공하는 방직공장에 취업했고,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합니다. 검정고시에 합격 후 몇 년간의 시도끝에 목표했던 대학교에도 합격합니다. SNS를 통해 계속해서 가해자5인방의 삶을 파악하고, 복수를 설계해 나갑니다. 
 
기상캐스터가 된 연진은 자신의 악행을 철저히 숨긴 채 재계 인사인 도영과 결혼을 하고 딸인 예솔을 낳습니다. 가해자 5인방 중 한 명인 재준과의 불륜관계도 계속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라는 마약에 빠져 살면서도 철저히 숨긴 채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었고, 혜정은 스튜어디스, 재준은 골프클럽과 명품 편집샵 오너, 명오는 재준의 잡일을 도맡아하는 운전 기사가 되어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동은. 드디어 여정(이도현)과 인연을 맺습니다. 각자 응급실에 실려와 나란히 병상에 누워있다가 눈이 마주친 그들. 여정은 동은에게 한 눈에 감정의 동요를 느꼈고, 인턴 의사였던 그는 동은이 처방전을 챙겨가지 않은 것을 핑계로 그녀를 수소문해 찾아가곤 합니다. 연진의 남편인 도영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의 관심사인 '바둑'을 배우고 싶었던 동은. 
 
동은은 노인들이 모여 바둑을 두는 학교 근처 공원을 맴돌다가 여정을 만나게 되고, 여정의 제의로 그에게 매 주 바둑을 배우기로 합니다. 그렇게 한 해를 넘게 바둑을 두며 만나오던 두 사람. 어느 날, 동은은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바둑 교습을 그만두겠다고 했고, 도현은 낙심한 채로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됩니다.

그 사이 동은은 현남(염혜란)과 인연을 맺게 되고, 현남을 가해자 5인방의 정보수집을 위해 고용하게 됩니다. 현남의 남편은 현남과 현남의 딸에게 도를 넘어서는 폭력을 행하고 있었고, 현남은 동은을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탈출하게 해줄 동아줄로 여기고 그녀를 따르게 됩니다. 동은은 현남의 딸에게 매 주 토요일 기차안에서 과외를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차안에서 오랜만에 여정과 재회하게 되고, 다시 인연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기차안에서 재회한 동은과 여정.
 
동은은 가해자 5인방 중 하나인 명오에게 가장 먼저 접근해 복수 계획에 따라 미끼를 던집니다. 그런 한 편 대학교 선배인 수한(강길우)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이 간간히 비춰지는데, 수한은 바로 과거에 동은을 폭행했던 담임 교사 김종문의 아들이었습니다. 동은이 애초에 이 대학교에 입학한 이유가 담임의 아들 수한에게 접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은은 수한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꽃다발을 들고 담임 김종문에게 방문해서는 반갑게 인사합니다. '선생님. 저, 동은이에요.' 동은을 알아본 담임 김종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동은을 때리기 전 풀었던 손목시계는 현재, 수한의 손목에 채워져 있고 수한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비리와 폭력에 연루된 부패 교사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장면은 바뀌어 세명고등학교 체육관입니다. 이 곳에 동문 시상식이 열렸고, 연진이 수상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해자 5인방이 모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뜻밖의 인물인 동은이 이 시상식장에 나타났고, 마침내 그 들이 대면하게 됩니다. 하얀 옷을 입은 동은과 마찬가지로 하얀 옷을 입은 연진. 동은이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어떻게 지냈어, 연진아? 방송은 잘 보고 있어.
화면으로 보니까 너.. 되게 착해 보이더라? "

동은의 안부를 묻는 말에 악랄한 표정을 짓던 연진도 동은에게 근황을 묻습니다.

동은은 바로 전 상황 떠올립니다. 오랫동안 뒷조사해서 얻은 세명 이사장의 유언장. 동성애자인 세명 이사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와 연애 중 이었고, 아들과 예비 며느리 몰래 유산 일부를 그 운전기사에게 상속하겠다는 유언장을 써 둔 상황이었습니다. 그 유언장의 사본이 동은의 손에 들어왔고, 그녀는 이 것을 이용해 세명초등학교 1학년 2반 담임이 되는데에 성공합니다. 1학년 2반은 연진의 딸 '하예솔'이 속한 반입니다.

동은은 시상대 위에 선 연진을 향해 크게 웃으며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쳤습니다. "화이팅, 박연진! 브라보! 멋지다, 연진아! "

'오늘 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거야. ' 동은의 광기어린 독백으로 3화가 마무리 됩니다.



동은과 현남, 폭력 피해자들의 표상

저는 1화, 2화까지만 해도 방관자로서 드라마를 감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3화 부터 서서히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고, 아래의 대사는 저에게 기폭제로 다가왔습니다.

차 안에서 접선한 동은과 현남이 정보를 주고 받으며 대화하던 중 유쾌하게 웃던 현남이 이런 말을 합니다.

"왜요? 맞고 사는 년은 웃지도 않고 사는 줄 알았어요?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
"허, 세상에.." 라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던 동은이 금새 입을 꽉다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합니다.

동은 : "그런 얘긴 진작 하셨어야죠. "
현남 : "뭘요?"
동은 : "명랑하신거요. "
현남 : "...? "
동은 : 전 웃고싶지 않거든요. "
현남 : "왜요? "
동은 : 웃다보면 잊어버릴까봐요. 내가 뭘 하는지. "

동은. 드라마가 담고 있는 '학교 폭력'과 '복수'라는 주제로 인해, 주인공인 동은은 과묵한 캐릭터입니다. 가끔씩 내뱉는 대사마저도 한결같이 무미건조합니다. 목적이 없이는 말을 길게 하는 법도 없고, 목표가 없이는 소리내어 웃지도 않습니다. 그런 동은이 명랑한 현남에 의해 웃음이 피식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의 즐거움도 결코 자기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 동은. 그래서 그녀의 '전 웃고 싶지 않거든요'라는 한마디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처음으로 동은이라는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사람으로 제 마음속에 뚜벅 뚜벅 걸어 들어온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알던 김은숙 작가 스타일의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미사여구가 없었던 그 평범하고 짧은 한 마디는, 연진에게 '내 꿈은 너야'라고 말했던 이 후부터 지금까지 동은이 살아온 그 긴 세월의 서사를 단 번에 일축하는 그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 세월의 무게감이 저의 마음을 지그시 눌러, 이후로 동은은 제게 실존하는 한 인간이자 폭력 피해자들의 표상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 뒤 현남의 대사는 2연타로 묵직한 한 방이 되어 다가옵니다.

"명랑하지만 명랑할 기회가 없다가 숨이 쉬어져서.. 자꾸만 웃게 돼요.. "



드라마에서 '김밥'이 가지는 의미

억울하게 학교를 그만두게된 동은이 가장 먼저 살기 위해 했던 일이 김밥집에서 끝도 없이 김밥을 마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던 동은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주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곤 합니다. 드라마의 첫 장면 부터가 에덴 빌라 옥상에서, 연진이 살고 있는 저택을 내려다 보면서도 한 손엔 김밥을 든 모습이었습니다. 지긋 지긋할 법도 할텐데 말입니다. 동은에게 김밥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드라마에서 '김밥'은 가장 저렴하게, 가장 적은 시간을 들여 식사를 해결하는 용도 외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동은에게 김밥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이기도 하고, 어린 동은이 스스로 생존하게된 도구이기도 하며,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끝없이 상기시키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죽도록 노력한 끝에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군인 '교사'라는 집단에 합류하게된 동은. 어쩌면 동은은 이쯤에서 복수를 단념하고, 과거도 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삶을 꿈꾸는 것 조차 스스로 차단한 것 보여집니다. 모든 상처와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을 '복수'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지반을 받치는 초석으로 다져 놓았을 뿐입니다. 무심하게 삼켰던 김밥 한 줄도 참으로 비장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모순' 또는 '역설'이라는 드라마적 장치

김은숙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건축가가 꿈이었던 동은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대신 복수를 설계하게 됩니다. 복수를 마치 건축물을 설계하듯 하나 하나 치밀하게 기초를 쌓고 골격을 세워나갑니다. 그 기나긴 시간을 감내 하고서 말입니다. 김은숙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모순'과 역설을 사건이나 장면 곳곳에 드라마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드라마는 피해자를 '악마의 나팔꽃'으로, 가해자를 '천사의 나팔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러니한 비유에서도 많은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우리 사회가 '폭력'과 '피해자'를 대하는 이중적인 모습과 그 부조리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해자가 오히려 떳떳해서 분노를 유발하는 것 또한 포함해서 말입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자신을 꼭 꼭 숨겨야 하는 상황을 우리 사회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때로는 피해자가 '그런 짓을 당할만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나날이 끔찍한 범죄로 심화되어가는 '스토킹 피해'만 보더라도, 공권력의 보호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가볍고,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복수 당할지 모를 공포에 떨면서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복수를 행한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가 무참히 살해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가해자는 인권보호라는 명목하에 범죄 사실이 숨겨지고, 더없이 당당하게 세상에 섞여 살아갑니다. 애초에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대부분의 그들에게 미안함이나 뉘우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주변의 편견 가득한 시선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불필요한 자책까지 더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 아니 적어도 가해자 보다는 당당해야할 그들이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려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분다는 '악마의 나팔꽃'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상징하는 드라마적 설정에 납득이 갑니다. 일종의 역설 또는 반어법이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빗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죄인인것 처럼 숨죽여 살게끔 만드는 우리 사회를 '하늘'에 빗댄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부는 나팔 꽃. 그 꽃을 건방지다고 하는 하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에서 하늘 노릇하며 권력을 무기로 휘두르는 가해자들을 비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2차, 3차로 피해자를 가해하는 이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을 향해 나팔은 부는 행위는 피해자들의 봉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지상을 향해 나팔을 부는 '천사의 나팔꽃'은 고개를 아래로 떨굼으로써 자신의 진면목을 하늘(=이 세상, 이 사회)에 숨긴 가해자들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지상, 즉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긴 대상에게만 그 악마같은 진면목을 보이며 철저히 유린하는 가해자들의 실상을 상징하는게 아닐런지요. 세상(=하늘)은 이런 가해자들의 고개숙인 겉모습에 천사라고 착각하고 있고 말입니다.

천사인 척 하는 악마들, 악마라고 비난 받는 천사들. 진짜 천사의 영광을 가로챈 가짜 천사들. 자신들의 영광을 되찾아야 하는 진짜 천사들.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 피해자들이 처한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글로리', 마땅히 회복되어야할 영광

아시다시피, 글로리(glory)는 '영광'을 뜻하며 나팔꽃의 영어 명칭은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입니다. 피해자의 영광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제목이 아닐런지 생각해 봅니다. 위에 열거한 나팔꽃의 의미도 함께 담고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피해자들의 빼앗긴 영광을 되찾겠다는 김은숙 작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예고편에서 동은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영광도 없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것 또한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 시즌2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 '영광'과 '복수'라는 어렵고 모호한 상관관계를 잘 풀어내 줄 수 있을지 조바심이 느껴집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손이 피로 얼룩지기만 한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적 카타르시스' 수준 정도에서 끝내지는 않으리라'라고 기대해 봅니다.
 
by 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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